미국 2위 뱅크오브아메리카(BOA), ‘탈(脫) 런던’ 선언

영국 금융산업 고용 인원 220만 명 
메이 총리 ‘브렉시트 연기’ 내비쳐


[일요서울 | 곽상순 언론인] 2016년 6월 23일 영국은 국민투표를 통해 유럽연합(EU)을 탈퇴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개표 결과는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찬성 52%, 반대 48%였다. 이 투표 결과에 따라 지난 6월 19일 영국과 EU 사이에 정식으로 탈퇴협상, 즉 언론에서 즐겨 쓰는 표현대로 이혼협상이 개시됐다. 이 협상은 2019년 3월 말까지 끝내게 돼 있다. 영국에서 브렉시트 장관이, EU에서 브렉시트 담당 집행위원이 대표로 협상을 진행 중이다. 
브렉시트 협상을 둘러싼 영국 국내 여론은 “2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도대체 어떻게 이혼협상을 마무리 지을 수 있다는 말이냐?”로 집약되며, EU 측 입장은 “영국은 제발 EU에 줄 것을 주고 EU에게서 받을 것을 받고 신속하게 협상을 마무리 짓도록 협조적인 자세를 취해 달라.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 협상 사안에 대해 영국의 뚜렷한 입장을 조속히 밝혀 달라”로 압축할 수 있다. 
지난 7일 영국의 여론조사기관 ORB가 영국 전역의 성인 2000명을 대상으로 브렉시트 여론조사를 했다. “영국이 EU를 떠나면 살림살이가 더 나아진다고 보느냐”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40%가 “그렇다”, 37%가 “그렇지 않다”라고 답했다. 나머지는 “모르겠다”였다. 
영국은 2016년의 브렉시트 투표 이후 경제가 많이 흔들리고 있다. 그것을 물리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유럽 금융 중심지인 런던에서 탈출하고 있는 외국 금융기관들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JP모간체이스에 이어 미국 2위 은행이다. 이처럼 덩치가 큰 BOA가 브렉시트에 따라 EU의 거점을 런던에서 아일랜드 더블린으로 옮긴다고 지난달 21일 발표하자 시장에서는 이를 대형 금융기관들의 ‘탈(脫)런던’ 계획이 구체화하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BOA의 결정은 영국의 브렉시트에 따라 글로벌 금융기관들이 유럽 금융허브로 활용해 온 런던을 떠날 채비를 하는 가운데 나온 것이다. 글로벌 금융기관들이 속속 탈(脫)런던 계획을 발표하고 있는 것은 갈수록 불확실해지는 브렉시트의 앞길도 앞길이지만 무엇보다 금융기관에 생명줄이라고 할 수 있는 EU 전(全)지역 영업 허가권이 브렉시트로 인해 끊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EU 규정은 한 EU국가에서 영업하는 금융회사가 다른 EU 국가들에서도 영업하는 것을 허용한다. 금융기관들 입장에서는 브렉시트 이후 런던에 남았다가는 자칫 영국에 고립될 수 있다. 그래서 서둘러 다른 EU 대도시들로 탈출하고 있는 것이다. EU본부가 있는 벨기에의 싱크탱크 브루에겔은 브렉시트로 인해 런던은 은행 부문 1만개, 금융서비스 분야 2만개의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며 은행 고객들은 자산 2조1000억 달러를 영국 바깥으로 옮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런던 킹스칼리지의 경제학 교수 조너선 포르테스는 “그것이 세상의 종말은 아니겠지만 시티(런던의 금융가)에 상당한 타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금융서비스산업은 규모가 2290억 달러(미국은 1조2930억 달러)이며 220만 명을 고용한다. 그 중 3분의 1은 런던에 있다. 금융산업의 비중이 이 정도로 크기 때문에 은행들이 이전 계획을 발표하면 총리실에서 주목한다. 
많은 은행가들과 주요 경제단체 지도자들은 2019년 3월로 정해진 브렉시트 협상 마감시한을 몇 년 늦추는 과도협정을 EU와 맺으라고 테리사 메이 총리의 보수당 정부를 압박해 오고 있다. 이들은 과도협정이 필요한 이유로 2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협상을 통해 이혼합의를 최종적으로 완결 짓기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을 들고 있다. 
이들은 또 브렉시트 이행 기간의 연장이 없다면 EU와 강한 무역·고용 관계를 맺고 있는 영국 기업들이 영국-EU 미래관계의 틀이 정해지기 전 5억 명 단일시장을 상실할 것을 두려워한다. 이런 경제계의 요구에 대응하여 지난 7월 말 메이 정부는 이제는 과도협정을 원한다고 시사했지만 그 구체적인 조건을 제시하지 않아 불투명한 상태다. 그간 ‘하드 브렉시트’, 즉 완전하고 깨끗한 EU와의 결별을 주장해온 메이 총리가 최근 입장을 누그러뜨린 것은 지난 6월 총선에서 보수당이 과반 확보에 실패함으로써 정치적 동력을 일부 상실했기 때문이다. 6월 총선 결과는 메이 총리의 하드 브렉시트에 대한 유권자들의 거부로 해석됐다. 브렉시트를 둘러싼 불확실은 이미 영국 경제성장에 제동을 걸고 있다. 영국경제는 올해 1분기와 2분기 각각 0.2%와 0.3% 성장에 그쳤다. 이는 2013년 이래 최악의 실적이다. 지난 3일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은 올해 경제성장 전망치를 5월의 1.9%에서 1.7%로 낮췄다. 
브렉시트가 금융산업에 특히 문제인 것은 패스포팅(passporting)이라 불리는 EU의 법적 제도 때문이다. 만약 어느 은행이 영국에 현지법인을 개설하면 그 법인은 영국의 금융 규정을 준수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패스포팅은 영국의 그 법인이 국가별로 다른 은행감독 규정과 상관없이 EU 회원국 어디에서든 고객을 모집하고 지점을 여는 것을 허용한다. 이는 EU 전역에서 금융사업을 영위할 수 있도록 일종의 여권(passport)을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일단 단일시장에서 떨어져 나오면 영국은 자국의 패스포팅 권리를 상실한다. 바로 그것이 영국에 본사를 둔 은행들이 EU 내 다른 도시들로 이전할 필요가 있는 이유이다. 영국 금융감독청(FCA)에 따르면 현재 패스포팅 권리를 사용하는 영국 내 금융서비스 회사는 은행, 보험회사, 자산운용사를 포함해 모두 5500곳이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베인앤드컴퍼니의 독일 사무소 파트너 로버트 그뤼브너는 “이런 발표들은 은행들이 하드 브렉시트에 이미 매우 깊이 대비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외신에 밝혔다. 그뤼브너에 따르면 이런 종류의 이전은 계획하는 데에만 18~24개월이 걸린다. 따라서 영국이 EU와 과도협정을 맺을 요량이라면 이 문제를 놓고 “매우 신속하게 명료해질 필요가 있다”고 그는 말한다. 하지만 브렉시트 마감시한을 2~3년 늦추는 것에 대해서는 이제 수용적인 자세를 보이면서도 메이 정부는 사람들의 자유로운 이동은 2019년 3월 종료돼야 한다는 입장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방해받지 않는 노동력의 이동이 EU의 핵심 원칙이기 때문에 일단 영국이 유럽에서 오는 이민을 통제하기 시작하면 영국은 더 이상 EU 회원국으로 남을 수 없다. 단일시장 회원권을 포함하지 않는 과도협정은 EU를 대상으로 하는 사업, 특히 금융서비스에 의존하는 영국 산업들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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