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물에서 괴물이 된 그들, 약자들의 반란이 시작됐다

이윤택 연출가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검찰에서 촉발된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성추문 논란의 정점에는 ‘이윤택’ 연출가, ‘고은’ 시인, 배우 ‘조민기’씨 등이 있다. 이 연출가는 지난 19일 공개사과를 통해 성추행은 인정했으나 성폭행 의혹에 대해서는 전면 부인해 반쪽 사과 논란까지 일고 있는 상황. 조 씨는 입장을 번복하고 있어 여론의 질책이 들불처럼 확산되고 있다. 문단, 대학, 대중음악계까지 성폭력을 당했다는 의혹이 잇따라 폭로되면서 미투 운동은 사회 전반을 ‘쓰나미’처럼 휩쓸고 있다.

이윤택 ‘앵무새 답변’에 취재진 “어쩌겠다는 건지...”
너덜거리는 문화예술계···‘미투’ 들불처럼 번진다


최근 ‘성폭력 논란’에 휩싸인 이윤택 연출가(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가 지난 19일 오전 10시 명륜동 30스튜디오에서 공식사과 기자회견을 열었다. 30스튜디오는 관객 약 7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 연출가가 등장하기 전, 현장에는 100여 명의 취재진이 몰리면서 취재 열기가 뜨거웠다. 긴장감마저 맴돌았다. 취재진뿐 아니라 극단 관계자, 연극계 종사자들도 눈에 띄었다.

문이 열리고 백발의 이 연출가가 나타나자 카메라 플래시가 빗발쳤다.

시작은 좋았다. 그는 무대 중앙에서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사죄를 드린다. 부끄럽고 참담하다. 무릎을 꿇고 제 죄에 대해서 법적 책임을 포함해 그 어떤 벌도 받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성관계를 맺었다”면서도 성폭행은 아니라고 부인했다. 행위를 부정하진 않지만 물리적인 성폭행이 아니라는 셈. 그는 “상호간 믿고 존중하는...”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이때부터 현장에 있던 대다수가 고개를 갸웃거리기 시작했다. 이미 여러 논란에 대해 공식 사과하겠다는 사람의 입에서 이러한 말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후 취재진의 질문이 쏟아지자 그는 언행불일치와 모르쇠로 일관했다. “성폭행이 아닌데 사과를 왜 하느냐”라는 질문이 나올 정도였다.

피해자가 속한 극단 관계자들은 이를 참지 못했다. 곧바로 “사죄는 당사자에게! 자수는 경찰에게!” “언론플레이 하지 마라!” “여배우라고 하지 마라! (우리는) 배우다!” “연극계 같은 소리하고 있네!” 등 울분을 토했다.

“죄송하다” “모르겠다” “법원에서 재판 받겠다” “여기서 구체적으로 밝히기 힘든 부분” 등의 앵무새 같은 답변을 내놓는 기자회견이 끝나자 취재진들은 한숨을 내뱉었다. “어쩌겠다는 거야”라는 탄식이 들리기도 했다. 이 연출가가 공개사과를 하겠다며 취재진을 모았으나 ‘스스로 차려놓은 밥상’을 뒤엎은 셈이기 때문이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했던 한 연극계 종사자는 이 연출가의 사과에 대해 “실소가 나온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 당사자들이 아주 조금이라도 위로받을 수 있는 진정한 사과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연극계 미투 운동에 대해서는 “연극계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닌 사회 전반에 걸친 구조적인 문제일 것이다. 자기가 속한 조직을 돌아볼 때다”라고 밝혔다.

김소희 연희단거리패 대표는 기자회견이 끝난 직후 30스튜디오 입구 앞에서 “연희단거리패를 오늘부로 해체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윤택 성추행 논란)은 도저히 용납이 안 된다. 왜냐하면 관객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라면서 이같이 밝혔다.

그러나 김 대표도 이 연출가의 단원 성폭력‧성추행 사실을 알면서도 묵인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그는 이날 이 연출가가 여성 단원들에게 가한 행위를 성폭력으로 인지하지 못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 연출가 성추문 소식은 매일 화수분처럼 쏟아지고 있다. 경남지방경찰청은 전 밀양연극촌 이사장인 이 연출가, 전 밀양연극촌장 하용부(중요무형문화재 68호 밀약백중놀이 보유자)씨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밝힌 피해자뿐 아니라 또 다른 추가 피해자를 조사하는 상황.

이 때문에 연극계의 전범(典範)으로 통했던 연희단거리패의 명예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사회관계망서비스(이하 SNS) 등에서는 내분에 가까운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이미 해체 선언을 했음에도 너덜거리는 상황이다.

피해자가 적어놓은 내용은 글을 그대로 옮기기 힘들 정도로 가해 정도가 심하다. 내부 폭로자도 등장했다. 지난 2008년부터 연희단거리패에서 활동해온 배우 겸 연출인 오동식씨가 자신의 SNS에 “나는 나의 스승을 고발한다”면서 연희단거리패에서 성추행‧성폭력 사건을 무마시키려고 했던 정황과 기자회견 리허설까지 진행했다는 내용을 폭로했으나 누리꾼 상당수가 그를 지지하는 대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윤택 왕좌’의 측근이자 방관자였던 장본인이 뒤늦게 침몰하는 배에서 탈출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는 비판이다.

특히 오 씨의 글에 ‘한 1년 전 익명으로 이 연출가의 성추행을 폭로했으나 결국 글을 내렸던’ 피해자로 등장한 누리꾼은 댓글을 통해 “혼자 살아남기 위해서는 아니었으면 좋겠다”라고 썼다. 그러면서 “나 역시 들었던, 오빠(오 씨)가 저지른 잘못들에 대해서도 언젠가 털어놓고 그들에게 사과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또 오 씨는 배우 조민기(본명 조병기) 씨가 청주대 학생들을 성추행했다는 사실을 알고도 묵인했다는 주장도 제기된 상황이다. 두 사람은 모두 청주대학교(이하 청주대) 출신으로, 오 씨는 조 씨가 교수로서 이 학교에 재직할 당시 강의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자꾸 번복하는 이유는?
경찰 조사가 해답

 
배우 조민기 씨도 ‘성폭력 논란’의 대상이다. 조 씨에 대한 폭로도 잇따라 터지고 있다. 그는 지난해 11월까지 교수로 재직한 청주대 연극학과 내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수년간 성추행 행각을 벌였다는 의혹에 휩싸인 상황.

지난 20일 이 사건이 불거지자 조 씨는 소속사 윌엔터테인먼트를 통해 “명백한 루머”라며 “엄중히 대처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다음 날 조 씨의 성추행과 관련된 졸업생들의 구체적인 증언들이 터져 나오면서 그는 다시 한 번 소속사를 통해 “경찰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면서 한발 물러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조 씨는 같은 날 방송 인터뷰에서 또 한 번 강경하게 “음해”라며 억울한 심경을 밝혀 논란에 불을 지폈다.

조 씨와 해명과는 달리 또 다른 폭로도 다시 터지면서 이번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모양새다.

당초 조 씨는 성추행 의혹이 불거지자 학교로부터 정직 3개월의 중징계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조 씨 측(소속사)은 “(학교로부터) 성추행으로 인해 중징계를 받은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면서 전면 부인하고 학교 측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조 씨 측은 “수업 중 사용한 언행이 수업과 맞지 않는다는 대학의 자체 조사 결과에 따라 징계를 받은 조 씨는 도의적 책임감을 가지고 스스로 사표를 제출한 것일 뿐, 보도된 학교 측의 성추행으로 인한 중징계는 사실이 아니라며 이러한 학교 측의 입장에 깊은 유감을 표하는 바”라고 주장했다.

여러 사실 확인을 위해 청주대 측의 입장을 들어보기로 했다. 지난 22일 청주대 대외협력실 관계자는 일요서울에 “피해 당사자들의 2‧3차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피해 내용‧과정 등은 전부 비공개하고 있다. (조 씨에 대한) 징계 절차가 끝났고 면직 처분을 했기 때문에 학교에서 남은 것은 경찰에 대한 신속하고 정확한 협조”라고 밝혔다.

이어 “(사직서의) 시점은 정확하게 모르겠다. (당초) 징계 절차가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사직서를 제출했어도 사직 처리가 안 될 수밖에 없다. (성추행과 관련된) 징계인지는 정확하게 전달할 수 없다”고 전했다.

‘학교 측은 조 씨의 성추문과 관련해 복수 학생들의 제보를 받기 전까지 모르고 있었느냐’라는 질문에는 “(내부에서 일어난 일이고 학생들이 도움을 요청하지 않으면) 인지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짧게 답했다.

지난해 9월경에도 청주대는 성 문제와 관련해 골머리를 앓은 적이 있다. 청주대 총학생회가 항공운항학과 비행교육원 교관이 학생들을 상대로 폭행, 성추행 등을 했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폭로한 것.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청주대는 이번 조 씨 사태가 다시 일어난 것에 대해 더욱 큰 질타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러나 관계자는 “(진상 조사 결과) 사건 자체가 사실 무근으로 밝혀졌다. 무혐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 씨의 사건과 기자들의 취재 등으로) 학교가 쑥대밭이 되는 분위기다. 학생들은 피하고 난리인 상황. 내일(23일) (청주대) 연극학과 졸업식도 비공개로 한다. 학교 측은 (조 씨 사건과 관련해) 발 빠르게 대처했다”면서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경찰 수사로 시시비비(是是非非)가 가려져야 한다. 학생인권이 보호되면서도 수사가 신속하게 진행돼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지난 22일 조 씨의 소속사 윌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정확한 진상 파악을 하고 입장 발표를 한 것이냐’라는 일요서울의 질문에 “파악하지 않고가 아니라 상황에 맞게 대처한 부분. 그때(첫 발표)는 (잇단) 폭로가 없는 상황에서 그에 맞는 방안을 찾은 것이고 지금은 폭로가 많아지다 보니 상황이 바뀐 것”이라며 “우리는 이 상황에 대한 심각성을 알고 있기 때문에 조 씨는 조사에 성실히 임해야 할 것 같고 (추후 조치에 대해서는) 경찰 조사 결과를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충북지방경찰청 여성청소년과 관계자는 지난 22일 일요서울에 “조 씨 사건과 관련해 내사를 진행 중. 아직 달라진 것은 없다. 본격 수사는 시작하지 않았다”면서 “수사가 시작되면 알릴 것”이라고 밝혔다.

조 씨는 이번 논란으로 인해 사실상 연기 활동을 중단했다. 그는 다음 달 3일 방송 예정인 케이블 채널 OCN 드라마 ‘작은 신의 아이들’에서 하차했다.
 
이낙연 “가중처벌 하겠다”
 
고은(본명 고은태) 시인도 예외는 아니다. 그도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됐다. 그는 논란이 지펴지자 “(경기 수원) 광교산 문화향수의 집을 떠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또 단국대학교 석좌교수직에서도 물러났다.

또 항간에서는 교육부가 고은 시인의 작품이 수록된 중등교과서에서 작품 삭제까지 수정 논의 계획하고 있다는 설까지 돌았으나 교육부는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교육부는 “중‧고등학교 국어교과서는 검정도서로 수정‧보완 권한이 발행사와 저작권자에게 있다”고 밝혔다.

한국작가회의는 성추문에 휩싸인 고은 시인과 이윤택 연출가의 징계안을 처리할 예정이다.

지난 22일 한국작가회의는 “3월 10일 이사회를 소집해 ‘미투’ 운동 속에서 실명이 거론된 고은‧이윤택 회원의 징계안을 상정 및 처리한다”고 발표했다.

이어 “‘평화인권위원회’에 ‘성폭력피해자보호대책팀’(가칭)을 상설 기구로 둠으로써 피해자 목소리를 경청하고 그 상처를 치유하는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면서 “미투 운동을 계기로 남성 문화권력에 대한 준엄한 자기비판과 냉엄한 비판적 성찰을 게을리 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 밖에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 22일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최근 우월적 지위, 즉 권력을 이용해 자행하는 성적 폭력이 잇달아 공개되고 있다”면서 “권력 앞에서 저항하기 어려운 약자에게 권력을 악용해 폭력을 자행하는 경우 가중 처벌해야 옳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혹시 법의 미비가 있다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가중처벌을 할 수 있도록 준비했으면 한다”고 관련부처에 지시했다.

이 총리가 성추문에 대한 엄정한 대처를 촉구하면서 이 연출가, 조민기 씨 등에 대한 경찰 수사도 본격화 할 것으로 보인다. 또 공공부문 성희롱‧성폭력 근절을 위한 대책을 27일 발표한 뒤 문화계를 비롯한 다른 영역과 관련한 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안일한 늦장 대응으로 남을지 성폭력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대책이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런 가운데 오태석 연출가, 조근현 감독, 힙합 가수 던말릭(본명 문인섭), 사진작가 배병우 전 교수, 배우 조재현‧오달수‧이명행 씨 등 미투 운동을 통한 성폭력 파문은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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