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은 권력의 문제, 성별의 문제 아니다”

[일요서울 | 강민정 기자] 검찰 내부 성희롱 피해사실을 폭로한 서지현 검사를 필두로 성폭력 피해생존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한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 운동으로 사회가 들썩이고 있다. 미투 운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연대를 표명하는 위드유(with you, 함께하겠다)와 미퍼스트(me first, 내가 먼저 바뀌겠다) 운동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쓰나미처럼 온 사회를 휩쓸고 있는 미투 운동에 대해 노선이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와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왜곡된 사회적 권력관계로 인한 성폭력
예방은 다른 사람의 인격·인권 존중부터 시작


▲ 요즘 미투 운동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 피해자들 본인이 직접 사회에 이야기하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큰 변화라고 생각한다. 이들이 SNS에 본인을 드러내면서 시작된 것이 아닌가. 이런 변화의 바람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내부적으로 고민 중이다.

많은 사람들이 미투 운동에 동참하는 피해자들에게 지지와 공감을 표시하지만 그 이후에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는 상황이다. 지지와 공감 이후에는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하는지, 그런 이야기를 우리부터 먼저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회의를 하고 있다. 피해자가 말하고 끝나는 것으론 안 되지 않나. 이후 성폭력과 관련된 많은 담론들이 변화할 수 있게 해보려 한다.
 
▲ 이런 사건들은 과거부터 있지 않았나. 피해자들이 본인을 직접 드러내고 나서게 된 계기는?
 
- 사실 전에도 그런 목소리는 계속 있어왔다. 이것이 새로운 흐름이나 전에 없던 목소리는 아니다. 변화라면 언론에서 이런 목소리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이다. 또한 이런 목소리가 더 많이 터져 나올 수 있는 건 (말할 수 있는) 사회적인 분위기나 배경이 많이 축적됐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 성폭력 발생 원인에는 여러 가지 사회적 요인이 있을 텐데 그 중 가장 큰 것은?
 
- 성폭력은 권력의 문제다. 성별의 문제가 아니다. 권력이 누구에게 더 있는지, 권력을 남용하고 그것을 이용해서 타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문제다. 권력을 마음껏 휘둘러도 된다고 생각하는 왜곡된 사회적 문화들로 인해 일어나는 것 같다.
 
▲ 미투 운동에서 폭로된 것들과 유사한 사건들이 상담소에 접수된 경우가 많은가?
 
- 그렇다. 훨씬 이전부터 있었다. 지금 미투 운동을 통해 의료계, 연극계, 문화예술계를 포함한 직장이나 위계질서·권력을 이용한 피해들이 많이 나오고 있지 않은가. 그 이유는 직장, 생계, 노동환경들이 굉장히 가부장적인 분위기에서 폐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도제식 교육을 받는 문화예술계처럼 선후배 간의 위계가 명확한 집단은 훨씬 더 성폭력이 은폐되고 드러나지 않는 경우들이 지금 많이 밖으로 나오고 있다. 조직의 문제와 의사소통, 위계권력·질서에 대한 문제제기라고 볼 수 있다.
 
▲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교육이 중요한데 어떤 교육이 이뤄져야 할까?
 
- 공교육에서 젠더 감수성이나 인권 감수성을 키울 수 있는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번에 국민청원에서 ‘페미니즘 교육이 공교육에서 시행돼야 한다’는 국민청원이 20만 명 이상의 서명을 받았다. 그만큼 이 부분에 있어서 우리 사회 공교육의 역할이 커졌다는 생각이 든다.

직장 내 성희롱 교육에 대해 들어봤나? 직장을 가진 성인들을 대상으로 1년에 한 번씩 1시간 이상 받는 교육이다. 기업에서 이 교육에 대해 “의무사항이니까 해야 된다”고 생각하면 전 직원을 한 강의실에 모아 놓고 강사 1명이 1시간 동안 쭉 강의하고 끝난다. 사실 별 실효성이 없다. 교육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계속해서 생각해야 한다.
 
▲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동성 간 성폭력도 많이 발생한다. 하지만 신고율이 낮다.
 
- 동성 간 성폭력 경우에는 이성 간의 경우와 또 다르다. 한 가지는 아웃팅(Outing, 성소수자의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에 대해 본인의 동의 없이 밝히는 행위)의 위험이 굉장히 크다는 것이다. 피해 상담을 받기 위해서는 본인의 이야기가 함께 나와야 한다. 본인의 정체성 같은 것들을 노출할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선 신뢰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신뢰를 갖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누구에게 상담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정보 자체가 굉장히 적고, 우리 사회에서는 동성애자 혹은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의 시선이 너무 많다. 본인의 경험을 인지하고 그것이 성폭력이라고 인정하는 것도 굉장히 어렵다.
 
▲ 성폭력 피해자들이 언론이나 검·경찰 수사 과정에서 일어나는 2차, 3차 피해를 겪고 있다.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 수사 재판 과정에서도 2차 피해가 많이 일어나고 있다. 지금 시점에서는 수사 과정보다는 언론에 의한 2차 피해가 계속되는 실정이다. 언론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객관성을 갖고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같이 전달해 가면서 나아갈 방향이 어느 쪽인지를 알리는 것도 언론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피해자가 어떤 식의 얘기를 했다’로 보도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왜 지금까지 이 피해자가 얘기를 하지 못했는지, 어떻게 하면 달라질 수 있는지 하는 얘기를 언론에서 함께 해야 (사회적인) 변화가 더 좋은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 앞으로 미투 운동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 게 올바르고 좋을까.
 
- 성폭력 경험을 아직도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나 현재도 진행형으로 경험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드러내고, 얘기하고, 신고하면서 우리 사회에 성폭력이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를 우리가 우리 눈으로 직접 봐야 한다. 성폭력에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 ‘성추문’ 같은 가십거리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속해 있는 조직에서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물어야 한다). 나부터 변화하면 이런 사건들, 이런 피해자들이 나오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스스로 들었다.

앞으로는 우리가 이런 성폭력에 대해서 민감해져야 한다. 사실 이것은 다른 사람의 인격과 인권을 존중하면서부터 시작된다. 나보다 권력을 덜 가진 사람을 비하하고 비난하는 식으로 나와 선을 긋는 게 아니라, 같이 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동등한 구성원으로서 타인을 바르게 대하는 연습과 훈련이 돼야 한다. 기본적으로 어떻게 상대방과 어떻게 의사소통해야 하는지, 상대방을 어떻게 존중해야 하는지부터 시작돼야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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