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미제 사건 동일범으로 밝혀져

파헤쳐진 분묘 <사진=피해자 B씨 제공>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최근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한 남성이 이천시 장호원읍 일대 야산의 묘를 파헤친 후 유골을 흩뿌려 놓은 것. 경찰은 끈질긴 추적 끝에 범인을 잡는 데 성공했으나 60대 남성 A씨는 “우주의 신이 나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고 주장하고 있다. 피해자와 원한 관계도 전혀 없다. 경찰은 지난 2007년에도 동일한 사건이 발생했으나 범인을 찾을 수 없어 DNA만 확보했던 가운데 이번 범죄 현장에서 담배꽁초를 발견해 국과수에 DNA 분석을 의뢰한 결과 2007년 사건과 범인이 동일한 것을 확인했다. 일요서울은 충격적인 사건의 내막을 살펴봤다.

경찰, 파헤쳐진 분묘 흙더미 속 ‘담배꽁초’ 찾아 추적
범인 A씨, 조현병 앓아 망상 심각···“부속품 필요했다” 왜?


우주로부터 텔레파시로 지시를 받았다며 무덤을 파헤친 뒤 유골을 훼손한 60대 남성 A씨가 경찰에 붙잡혔다.

경기 이천경찰서는 분묘 발굴 및 사체 손괴 혐의로 A씨를 구속했다고 지난 8일 밝혔다.

A씨는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3월 말까지 4차례 장호원읍 일대 야산의 묘를 파헤친 뒤 유골을 밖으로 꺼낸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 2007년에도 동일한 사건이 발생한 바 있다. 경찰에 따르면 당시 1년 정도 수사를 벌였으나 범인을 잡지 못해 미제로 남았다. 범인의 땀이 묻은 수건 1장 외에는 별다른 단서를 찾지 못해 범인의 DNA를 보관하는 것으로 수사를 마무리했다.

경찰은 이번 사건 현장 흙더미에서 담배꽁초를 발견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에 의뢰를 해보니 지난 2007년 사건 현장에서 찾은 DNA와 일치한 것. 경찰은 이 담배꽁초를 가지고 수사를 벌인 끝에 범인을 검거했다.

경기 이천경찰서 강력1팀 정선호 형사(팀장)는 일요서울에 “현장에서 발견한 담배꽁초가 ‘던힐’이었다. 던힐 중에서도 특이한 담배였다. 판매도 많이 안 되는 담배라 이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누구인지 끈질기게 추적했다”면서 “요즘 편의점이나 마트 등에 포스(POS‧판매시점 정보관리시스템)가 있어서 판매기록이 다 남지 않는가. 그래서 판매 기록을 가지고 사건 현장 인근부터 추적했다”고 말했다.

이어 “한 달 정도 추적을 하다 보니 용의점이 있는 인원이 추려졌다. 우리는 이들 집 주변에서 잠복 수사를 실시했다. 이들이 피우고 버린 담배꽁초를 수거해 국과수로 보내는 과정을 거쳤다”면서 “그러던 중 이번 사건 현장에 있던 DNA하고 동일한 사람이 나왔다”고 수사 과정을 설명했다.

 
파헤쳐진 분묘 <사진=피해자 B씨 제공>
  팠던 묘지
다시 파헤쳐

 
A씨는 분묘의 봉분을 삽으로 파낸 뒤 봉분 밑을 최대 1m 50cm가량 파헤쳤다. 정 형사는 “산소가 오래된 것 같은 경우 30~40년이 되면 대부분 백골화가 돼 있기 때문에 유골밖에 없다. 분묘를 파서 유골이 나오니까 바깥으로 끄집어 내놓은 것이다. (유골이) 다 흩어져 있었다”고 현장 상황을 설명했다.

경찰은 또 A씨의 집 안에서 “팠던 묘지, 땅이 얼어 포기했던 묘지, 또 판다”라는 메모장도 발견했다.

경찰은 A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최근 4차례 범행 가운데 묘 1기를 훼손하지 못해 다시 시도한 것도 확인했다.

해당 분묘(아버지의 묘) 피해자 B씨는 일요서울에 “(A씨가) 같은 묘를 두 번 파헤쳤다. 첫 번째에는 (묘를 파헤쳐) 유골까지 나와 있는 상황이었다. 이후 가묘라고 해서 봉분(흙더미를 쌓아올려 만든 둥근 모양의 무덤)을 다시 해놨었다”면서 “두 번째는 A씨의 일기장을 보고 갔는데 봉분만 다시 싹 파헤쳤다. A씨는 (우리와)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정말 희한한 일이다”이라고 말했다.
 
2007년 사건
공소시효 끝나

 
경찰 조사에서 A씨는 “(우주의) 텔레파시 지시를 받고 했다”고 횡설수설하기도 했다. A씨는 피해자들과 원한 관계‧일면식도 없는 사람인 것으로 경찰 조사결과 확인됐다.

정 형사는 “A씨는 훼손한 묘의 유가족들과 일면식도 없고 원한 관계도 없었다. 조현병으로 망상이 심각한 상태였다. A씨는 조사에서 우주의 신이 자신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는데 머릿속에 어떤 부속이 없어서 텔레파시를 들을 수 없다고 했다”면서 “분묘의 유골을 꺼내면 거기에 부속품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부속품을 얻기 위해서 분묘를 파헤쳤다고 주장했다”고 했다.

지난 2007년 2월 장호원에서 발생한 묘와 유골 훼손 사건도 A씨의 소행인 것으로 확인됐다.

정 형사는 “지난 2007년 사건에서는 (A씨가) 매장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은 산소를 파헤쳤다. 당시 겨울이라 부패 진행도 늦어져 사체가 거의 그대로 있었다. 사체가 훼손됐기 때문에 우리나 피해자들도 다 원한 관계라고 봤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 2007년 사건은 지난해 공소시효(10년)가 끝나 미제로 남았다. 경찰은 지난 2007년 사건을 제외한 지난해 말부터 지난달까지의 4차례 범행에 대해 지난 5일 A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 받았다.

정 형사는 “(A씨가) 정말 기억을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더 큰 처벌을 받을 것 같아서 거짓말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여러 가지 정황상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본다”면서 “20~30년 전 얘기를 하면 30년 전에 있었던 일들을 A씨가 기억하는 것들도 있다. 그런데 11년 전 사건, 산소를 파헤쳐서 사람의 사체를 훼손했는데 기억을 못한다? 이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어 “공소시효는 지났으나 (A씨가) 이러한 범행을 했던 사람이고 그 부분을 법상으로 처벌을 못할 뿐인 거지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번 범행이 있으니 법원에서 (2007년 사건 등)도 참작해서 처분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피해자 B씨는 “이번 일로 인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됐다. 범인이 출감하면 정신질환자라 걱정이 많이 된다. 다시는 나와 같은 피해자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음의 상처가 많이 남는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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