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숙박비 12만~20만 원…과도한 규제의 산물

군인들이 동송시외버스터미널 근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일요서울 | 권가림 기자] 국방부가 지난달 21일 군 적폐청산위원회 권고안에 따라 위수지역(군인의 외출·외박 허용 구역)을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가 나가자 외박·외출 군인이 주 고객인 강원도 접경지 상권이 크게 술렁였다. 반대로 강원도 최전방 부대를 경험한 현역·예비역 장병은 반기는 분위기다. 제한 구역과 비교적 비싼 숙박비 등에서 모두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위수지역 중 물가가 가장 높은 곳으로 양구군, 철원군, 철원군 동송읍 지역 순으로 꼽는다. 기자는 동송읍을 찾아가 실제 물가와 최근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위수지역 폐지에 따른 상인과 군인의 견해를 각각 들어봤다.


-위수지역 ‘확대’가 현실적 vs 군인에게만 상생 넘기면 안 돼
-“60년간 軍 소비에 의존…대도시 가면 경제 황폐해져”



기자는 지난 11일 서울 동서울터미널에서 동송행 경유 버스를 탔다. 버스는 포천, 양문, 관인 등 6개 정거장을 거쳐 동송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총 소요 시간은 2시간 5분.

버스에서 내리자 휴가에서 돌아온 군인들이 맞은편에 줄을 서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터미널 내부에는 군인생활용품전문점이 자리 잡고 있었고 건물 밖에는 ‘군인 간부 우대’ 피시방, 당구장이 즐비했다.

 
동송시외버스터미널 내에 위치한 군인생활용품전문점

평일 오전인 만큼 많은 장병들은 볼 수 없었지만 휴가 복귀 전 시간을 보내는 군인들이 무리를 지어 다니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띄었다.

동송읍에 상주하는 부대는 육군 6사단.

6사단에 소속된 연대마다 위수지역은 다르지만 대략 경기도 관인면에서 철원군 지포리까지다. 그 때문에 군인들은 대부분 터미널 건너편 ‘동송 전통시장’에서 시간을 보낸다.

시장 안에는 삼겹살 전문점, 부대찌개집, 피시방, 노래방, 분식집 등 다양한 놀 거리와 먹거리를 즐길 수 있는 가게가 들어서 있다.

현재 철원에서 근무 중인 A 상병은 “주로 전우들과 숙박시설을 예약한 후 PC방에 가서 게임을 한다. 게임하다 점심을 먹고 또 게임 하러 피시방에 간다”며 “그렇게 오후를 보내고 저녁에는 외박 나온 전우들과 술 마시며 대화한다. 다음 날에는 대중목욕탕을 간다”고 현역 때를 회상했다.

기자는 군 인접 지역 바가지요금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시장 내부로 향했다.

 
한적한 평일의 동송 전통시장

당구장은 시간당 9000원을 받았고 피시방은 평일 1200원, 주말 1500원 수준. 수도권 지역의 PC방 가격이 1000원선임을 고려하면 다소 비싸게 여겨질 수 있는 요금이다.

실제 지난달 22일 기준 강원물가정보망에 따르면 위수지역인 철원(1400원)·화천(1550원)·양구(1330원) 등의 PC방 1시간 요금은 강원도 평균 요금(1269원)보다 높았다.

생삼겹살은 1인분(190g)에 7900원이었으며 고기 모둠(500g)은 1만5000원선이다.

특히 수입 삼겹살을 3900원에 파는 한 고기전문점은 토요일 오전부터 장병들로 북적인다고 한다.

서울에서 물가가 가장 높은 강남에서는 삼겹살 1인분(200g)에 1만3000~5000원이다. 이와 비교하면 동송읍은 저렴한 편이다.
 

숙박업소 요금
갈등의 중심
 


동송읍의 물가는 서울과 비교해 가격 차이가 크게 없었다.

다만 숙박 요금에 있어서는 차이가 드러났다.

기자가 찾아간 4개 모텔의 객실요금표에는 ‘1인당’ 일~월요일 5만~7만 원, 토요일 7만~12만 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동송시외버스터미널 뒤편에 위치한 모텔

군인들이 주말 외박을 했을 때 방을 예약하는 일이 많다는 걸 고려하면 부담스러운 요금이다.

서울 강남 인근의 주말 모텔비용은 2인 기준 평균 6만~8만 원이다.

아들이 가평에 복무 중이라는 박미숙 씨는 “군인 월급이 박하기 때문에 물가가 비싸 속상하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아이들이 안타까울 뿐”이라고 전했다.

육군 8사단(포천)을 제대한 황수한 씨는 “군 시절(2013~2015년) 피시방뿐만 아니라 숙박업소 등의 요금이 다른 지역과 비교해 비싼 편이라고 생각했다. 인근 모텔은 평일 5만~6만 원이며 주말은 10만 원 넘게 받는 곳도 있었다”라며 “외박 나간다고 하면 1인당 10만 원 이상 지출을 예상했다. 당시 군인 월급이 병장 기준 17만 원이었는데도 많이 나가긴 했다. 그래서 평소 부대에서 돈을 많이 아꼈다”라고 전했다.

육군 3사단(철원)에서 제대한 김영호 씨는 “펜션은 1박 기본 10~15만 원이었으며 주말은 20만 원으로 올라갔다”라고 말했다.

상인들은 동송읍 모텔 객실요금표는 ‘가짜 요금표’라고 입을 모은다.

방문한 면회객이나 군인들마다 다른 가격을 부른다는 것.

2002년부터 시장 내 뼈다귀해장국집을 운영했다는 정모 씨(62)는 숙박업소의 ‘바가지’ 요금 때문에 다른 상인들이 ‘적폐청산’ 대상으로 몰렸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는 “위수지역의 높은 물가 논란은 군인, 면회객들을 상대로 가격을 조장하는 일부 숙박업주 때문이다. 주변 식당은 가격표에 기재된 가격 이상은 절대 받지 않는다”며 “병사들이 토요일 오전 외박 나오면 먼저 현금자동입출금기에서 돈을 찾는다. 이후 방을 예약하고 식당으로 아침밥을 먹으러 온다. 군인들에게 객실 대여비가 얼마였느냐고 물어보면 12만 원 지불했다고 한다”라고 전했다.

마트를 운영하는 고모씨(64)는 “군부대 인근 높은 숙박비는 20년 전 우리 아들이 강화 지역에서 근무할 당시에도 문제였다. 제한된 지역 이상으로 나갈 수 없으니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비싸도 자식 때문에 자는 거다”며 “숙박비에 상한선을 정해야 이런 문제가 해결될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음식을 해먹을 수 있는 펜션으로 예약이 몰리는 추세라고 한다.

노래방을 운영하는 강모씨(66)는 “펜션도 가격은 싼 편은 아니다. 하지만 같은 가격이라면 넓고 음식을 해 먹일 수 있는 펜션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숙박업소 측에서도 할 말은 있다고 한다.

2003년부터 숙박업을 했다는 ㄱ모텔 업주는 “예를 들어 외박 나온 군인 두 명이 2인 요금을 내고 방에 들어간다. 너무 시끄러워서 올라가 보면 몰래 4명이 더 와 있다”며 “이런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라서 아예 주말 가격을 올렸다. 그래서 숙박업소 대부분이 평일보다 주말 가격이 높다”라며 반박했다.

양재신 철원군 숙박협회회장은 인건비, 부대시설 관리비 등과 비례하면 비싼 가격이 아니라고 토로했다.

그는 “군인 입장과 영업자는 생각하는 점이 서로 다르다. 철원을 비롯해 양구, 인제 등은 추운 지역이기 때문에 12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총 4개월간 온돌에 불을 때야 한다. 그 금액이 한 달 기준 150만 원이다”며 “나 같은 경우 한 달에 최대 160만 원을 번다. 건설 투자비용도 10억 원이나 들어갔다. 일 년에 1000만 원 손해 보고 있다”라고 탄식했다.

아울러 양 회장은 “군인들이 매일 나온다면 비용이 저렴할 수 있겠지만 주로 토요일에 나와서 일요일에 복귀한다. 손님이 찾는 횟수와 투자비용, 부대시설 유지비용 등을 따져보면 10만 원 이상 받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위수지역 폐지
다양한 시선

 
 
평일 텅 빈 코인 노래방
     주말 고객의 80%가 군인이라는 피시방 업주 김모씨(50)는 국방부가 위수지역 해제 소식을 발표했을 당시 ‘폐업’ 걱정에 노심초사했다고 호소했다.

앞서 군 적폐청산위원회는 ‘위수지역’ 제도가 인권침해 우려가 있는 불합리한 제도로 판단하고 이를 폐지하는 제도개선안을 국방부에 권고했다.

이에 국방부는 지난 2월 21일 군 적폐청산위원회의 권고를 수용해 위수지역 폐지를 발표했다. 하지만 국방부는 위수지역 주민이 강하게 반발하자 ‘폐지’에서 ‘폐지 검토’로 후퇴했다가 지난달 7일에는 ‘폐지안 보완’으로 한 발 물러섰다.

심지어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지난달 12일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면담 자리에서 “‘접경지역과 도서 지역 부대는 부대 규모·군사대비태세 등을 고려해 현지 지휘관들이 외출·외박 구역 제한 문제를 융통성 있게 유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답변을 송 장관에게서 들었다”며 “군 내부 의견수렴 과정 등 절차를 거친 이후 강원도 접경지역 군인의 외출·외박 구역 제한 문제는 현행 유지 쪽으로 결론 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최 지사는 “접경지역 주민은 휴전 이후 70여 년간 각종 군사규제에 따른 지역 개발 제한과 빈번한 훈련, 북한의 잦은 도발 위험에도 지역을 지키면서 큰 희생을 감내하며 살아 왔다”며 “장병의 위수지역 전면 폐지로 접경지역 경제가 황폐해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군인 사이에서는 위수지역 ‘확대’와 ‘폐지’로 주장이 갈렸다.

11공수특전여단(전남 담양)에서 전역한 지세훈 씨는 완전 폐지보다는 확장 개념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위수지역이 폐지되면 병력 통제에 어려움이 발생할 것이다. 단순히 지역 상인과 부대 간의 갈등으로 폐지한다면 부작용이 따를 수밖에 없고 대응책도 없다”며 “극단적인 해결책을 주장하기보다는 구체적이고 적절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했다.

36사단(원주)을 제대한 최의민 씨 역시 “위수지역 폐지는 극단적 조치이기 때문에 무리가 따른다고 생각한다. 군과 인근 주민이 면담을 통해 요구사항을 해결하면 좋겠지만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다”며 “그나마 위수지역 확대가 현실적인 방안으로 본다”라고 전했다.

반면 황수환 씨는 군인들한테만 상생의 책임을 묻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며 폐지를 주장했다. 그는 “서울에서 한 시간 반 떨어진 거리에 있어도 나가지 못한다. 불편하고 답답한 건 사실이다”며 “위수지역을 넓히는 것은 모든 군인이 바랄 것이다”라고 전했다.

아울러 황 씨는 정부가 위수지역 가격 정상화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금전적으로도 부담된다. 위수지역을 만든 취지가 부대에서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병력을 빨리 소집하려고 하는 거다”며 “그런데 상인들은 군인에게 높은 비용을 받으려고만 하니까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위수지역을 폐지하든지 바가지요금을 근절하든지 해야 한다. 국방부는 군인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게 옳다”라고 강조했다.

이날 만난 상인 대부분은 위수지역 폐지가 매출에 타격을 줄 것이라며 반대했다.

한 고깃집은 주말 손님 100명 중 외박, 외출 사병이 80%를 차지한다면서 “지난해 이맘때 6사단 병사들이 후방으로 철수한 적이 있다. 동송읍은 군인 반, 민간 주민 반이다. 군인 수가 줄어드니 당시 상인들은 무척 힘들어 했다”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아일랜드 피시방 직원은 “위수지역 폐지는 상권을 죽이는 일이다. 총 70석이 있는데 평일에 30석이 찼다면 주말에는 오전부터 군인으로 앉을 자리가 없다”며 “동송읍에는 철원초등학교와 철원여자중·고등학교, 철원중·고등학교가 있지만 학생 수도 많지 않아 군인까지 나가버리면 동송읍은 더욱 퇴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각종 규제에 묶인
주민·군

 

이를 두고 일각에선 접경지역에 쳐놓은 ‘과도 규제’가 갈등의 원인이라고 꼬집는다.

국방부 ‘부대관리훈령’ 제60조(외출 및 외박구역)에 따르면 외출 및 외박구역은 그 부대의 임무와 상황에 따라 지역적 또는 시간적 제한을 고려해 지휘관이 정한다.

다만 신병격려 외출·외박 및 성과제 외출·외박은 개인별 여건을 고려해 자가 등에 다녀올 수 있도록 지역을 확대해 허가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군인복무기본법 시행령 제38조와 상위법인 군인복무기본법 제47조에 따르면 외출·외박 지역의 제한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등의 경우로 한정한다.

하지만 군인은 그간 외출·외박을 나가더라도 2시간 이내에 부대로 복귀할 수 있도록 제한된 지역에만 머물러야 했다. 비상 상황을 대비한 조처였지만 군인들은 질 낮은 서비스와 상대적으로 비싼 요금 등을 감내해야 했다.

접경지역 주민들은 노후된 시설과 높은 물가가 지역 주민의 탓인 것처럼 비쳐 ‘적폐 청산’ 대상으로 취급되는데 황당한 입장이다.

접경지역 시장·군수협의회는 “우리도 군 장병이 외출·외박했을 때 좋은 문화시설에서 즐기길 바란다. 하지만 이런 기반시설이 들어서지 못한 이유는 정부가 국가안보라는 명분으로 접경지역에 쳐 놓은 규제 탓이 크다”며 “이른 시일 안에 군과 민의 상생을 공동 의제로 올려놓고 최선을 방법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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