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국회의원 시절 공직자와 피감기관에는 저격수로 또는 저승사자로 불렸던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이 사퇴했다. ‘역대 최단’ 기간인 보름 만의 불명예 낙마다.

금감원은 한 달 새 두 명의 수장을 잃은 초유의 사태에 놓이게 됐다. 벌써부터 유력한 인물이 거론되고 있는 가운데 김기식 전 원장보다 더 센 사람이 온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다. 금융권은 물론 기업들도 초긴장 상태다. 일각에서는 금감원과 금융위의 통합론이 재차 언급 되고 있다.
 
- 청문회스타 ‘주진형’ ‘안원구 전 국세청장’ 거론
- 학계‧관료 출신도 등장…고심 중인 청와대의 선택은 


금감원장은 금융위원장이 제청하면 대통령이 임명하는 형식이지만, 대통령이 낙점하는 차관급 자리다. 하지만 ‘금융검찰’로 불리며 막강한 권한을 행사한다.

이 자리에 오른 최흥식 전 원장이 채용비리 연루 혐의로 사임 한지 불과 2주일 만에 김기식 신임 원장이 지난 18일 사임하면서 금감원장직은 또 다시 공석이 됐다.

이에 따라 벌써부터 금감원장 자리를 놓고 유력한 인물이 거론되고 있다. 현재 언급된 인사의 면모를 보면 주진형 전 한화증권 사장부터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전성인 홍익대 교수, 이동걸 현 KCB산업은행장 등 민관 출신이 오르내린다. 금융권과 산업계는 분명 ‘더 센 사람이 올 것이 분명하다’며 긴장 상태다.
 
두 번 흔들린 금감원장 자리, 후임은? 
 
이런 가운데 ‘주진형 전 사장을 차기 금감원장으로 추천한다’는 국민 청원까지 등장해 관심을 모은다. 한 청원자는 “김기식 전 금감원장보다 더 엄격하고 재벌개혁과 부정한 상속, 산업자본의 개혁을 잘 처리하실 분을 발탁해 달라”는 말과 함께 청원에 동의했다.

주 전 사장은 삼성증권 전략기획실장과 우리투자증권 리테일 사업 본부장 등을 거쳐 한화증권을 이끌었다. 한화증권 재직 당시 매도 보고서가 없다는 점을 비판하기도 했으며, 삼성그룹 출신이면서도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증권사 가운데 유일하게 반대 보고서를 제출해 주목을 받은 인물이다.

특히 ‘최순실 청문회’ 과정에서 한화그룹과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 부당한 외압이 있었음을 폭로하기도 했다. 주 전 사장은 김 전 원장에 못지않게 재벌개혁에 강한 의지를 나타내왔다.

또한 주 전 사장은 문재인 정부가 타깃으로 삼다시피 한 삼성그룹에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내며 두각을 나타냈다. 

비트코인 갤러리에는 ‘채이배 금감원장으로 가즈아’라는 글귀가 소개되기도 했다.
채 의원은 경제민주화, 공정성장, 재벌구조개혁의 전문가로 꼽히는 경제통이다.
공인회계사 출신인 채 의원은 삼일회계법인에 근무하면서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실행위원으로 활동했다.

채 의원은 특히 일감몰아주기 등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집중적으로 연구했다고 한다. 경제개혁연대가 참여연대에서 독립하면서 전업으로 기업지배구조 등을 다루는 상근 연구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경제개혁연대에서 ‘장하성펀드’가 투자할 회사를 분석하는 일도 수행했다. 20대 국회 입성 당시 대기업의 지배 구조개선 작업을 주장해 재계를 긴장시킨 인물로 인구에 회자되기도 했다.

안원구 전 대구지방국세청장도 누리꾼들이 밀고 있는 차기 금감원장 후보 중 한 명이다.

1960년 경상북도 의성 출생인 안 전 청장은 서울지방국세청 조사1국장, 국세청 국제조세관리관, 대구지방국세청장을 지냈다. 대구청장 재직 시절 ‘도곡동 땅 실소유주 문건’을 통해 이명박 전 대통령이 실소유주임을 공개해 2년간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이후 이명박 은닉 재산을 추적하거나 정치 및 경제 권력을 향한 시민운동에 나서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한 누리꾼은 “전직 국세청장으로서 금융 적폐 세력들이 어떻게 불법으로 이득을 취하는지 잘 알고, 앞으로 그것을 어떻게 막아야 하는지 잘 아는 안원구 전 청장을 신임 금감원장으로 추천한다”고 썼다.

이외에도 윤석헌 서울대학교 객원교수(전 금융행정혁신위원회 위원장), 심인숙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전 한국금융학회장), 고동원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전 금융행정혁신위원) 등이 언급되고 있다.

관료 출신 후보군으로는 김주현 우리금융경영연구소 대표, 윤종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표부 대사, 정은보 전 금융위 부위원장, 고승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유광열 금감원 수석부원장,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

금감원장이 문재인 정부에 들어서 이미 세 번째 인사인 만큼, 철저한 도덕성 검증 작업이 진행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만큼 적임자를 찾기까지 시간이 더 소요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오는 27일 열리는 남북정상회담과 6월 13일 지방선거 등 큰 일정을 앞두고 있어 원장 공백은 더 길어질 가능성도 높다.

아울러 그 어느 때보다 강도 높은 금융개혁을 원하는 현 정부 기조 상 관료 출신보다는 외부인사가 선임될 가능성이 높다는 데에 힘이 실리고 있다.

- 금융권 말 아끼면서 사태 추이 예의주시
- 강성 후임 거론에 다시 긴장…산업계도 주목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한 분야는 과감한 외부 발탁으로 충격을 주어야 한다는 욕심이 생긴다”고 언급한 걸 고려하면 차기 원장에도 개혁 성향의 민간 출신 인사가 올 가능성이 여전히 높다는 분석이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금감원장에 새로 누가 온다고 하면 그 사람은 어떤 성향인지 분석하고 눈치를 봐야 한다”며 “혹시 더 센 사람이 오지 않을까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산업계도 긴장한다는 후문이다. 자칫 김기식 전 원장보다 더 센 사람이 기업을 옥죌 수 있는 위치에 있던 사람이었다면 그 파급력이 기업에도 미칠 것이 분명하기 때문. 일부 기업이 금감원장 하마평에 귀를 기울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금융 계열사를 소유한 기업들일수록 수장 교체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

앞서 두 차례 외부인사 선임에 따른 충격을 맛본 현 금감원의 입장에서 또다시 외부 선임에 따른 위험성을 감수할 수 있겠느냐는 반론도 제기된다. 당장 수장 공백에 따른 사태 수습이 급선무이긴 하나 수장 선임 과정에서 연달아 도덕성에 대한 의혹이 제기돼 불명예 낙마한 상황에서 또다시 외부 인선으로 고강도의 금융개혁에 도전하기엔 금융당국의 신뢰도 차원에서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이번 인선만큼은 안정성을 추구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위법했다” VS “억울할 만” 
 
일각에서는 금감원과 금융위의 통합론이 거론되기도 한다. 현 정부 초기만해도 금융정책과 금융감독 체계 분리와 같은 조직‧기능 개편은 최소화하되 감독기능 강화라는 구상 아래 금융위원장이 금융감독원장을 겸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했었다.

당시 명칭은 ‘금융감독위원장 겸 금융감독원장’이었다.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 김대중 정부 당시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초대 금융감독 통합 사령탑으로 카리스마 있는 리더십을 보인 이래 이용근.이근영.이정재.윤증현.김용덕 위원장 등이 두 기관장을 겸했다. 그러다 이명박정부 들어 금융정책과 금융감독을 한 지붕 아래 두는 지금의 금융위원회 체제가 갖춰지면서 두 기관장을 별도로 두기 시작했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다시 통합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편 김기식 전 원장은 지난 18일 SNS를 통해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점 다시 한 번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이번 사안이 문제될 것이라고 생각지도 못했고 일부 비판 중에는 솔직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들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법률적 다툼과는 별개로 이를 정치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다”며 “누를 끼친 대통령님께 죄송한 마음 뿐”이라고 덧붙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하루 전 인 17일 국민정서를 고려해 김기식 금감원장의 사표를 수리했다. 이날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김 의원이 임기 만료 전 민주당 의원 모임인 ‘더 좋은 미래’에 기부금을 낸 것이 공직선거법상 위반이라는 결론 직후의 결정이다. 이로써 김 전 원장은 최흥식 전 금감원장에 이어 최단기 금감원장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꼬리표를 달게 됐다.

두 번째 금감원장 대행을 맡게 된 유광열 수석부원장은 “직원 사기 보듬을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며 “이전에 하던 정책 방향을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해선 임원들과 숙의해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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