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서는 휘파람만 불어도 ‘범죄’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현재 한반도는 미투 운동의 확산으로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 모양새다. 이런 추세에 맞춰 가해자 처벌법 강화를 호소하는 목소리가 함께 커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비접촉 성범죄’의 처벌은 모호한 상황이다. 수사 당국은 직접적인 신체접촉이 없으면 처벌이 힘들다는 이유를 늘어놓고 있다. 프랑스 등 일부 나라에서는 지나가는 여성에게 휘파람만 불어도 처벌이 가능한 법안을 제정하는 가운데 국내 처벌법은 아직 턱없이 모자라다는 지적이 나오는 형국이다.

법이 현실을 못 따라가···피해자 목소리 반영해야
캣콜링 행위 ‘경범죄’···인식 못하는 경우 많아 피해자 증가


최근 지하철역에서 중년 남성으로부터 성적 수치심을 느끼는 말을 들었다고 토로한 한 여대생의 글이 사회관계망서비스(이하 SNS)에서 화제가 됐다. 이 여대생은 남성의 말을 녹음해 경찰에 제출했으나 직접적인 접촉이 없었다는 이유로 처벌되지 못했다며 분노했다.

여대생 A씨는 해당 글에서 “지하철역에 앉아 있는데 40대 가량의 남성이 많은 자리를 놔두고 굳이 옆에 앉더라”라며 운을 뗐다.

A씨의 주장에 따르면 남성은 A씨에게만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XX하고 싶다” “XX이 치고 싶다” “만지고 싶다” “어차피 너도 하잖아” “똑같은 거야 같이 하자” 등의 발언을 했다. A씨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반응을 피했으나 남성은 A씨에게 “외롭다. 같이 술 마시러 가자”고 말을 걸었다.

A씨는 평소 음성메모를 켜두고 다니는 습관이 있었다고 한다. 이런 습관 덕에 휴대폰에는 남성의 목소리가 담겼으며 이를 토대로 경찰에 신고한 뒤 이 파일을 제출했다.

그러나 경찰은 A씨에게 ‘처벌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고 한다. 직접적인 접촉이 없었다는 이유에서다. A씨는 “(경찰이) 직접적인 접촉이 없어서 처벌규정이 없으며 굳이 한다면 ‘불안감 조성’으로 경범죄 처벌, 1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 것이라고 했다”고 적었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남성의 무임승차 사실이 밝혀졌다. A씨의 주장에 따르면 경찰은 A씨에게 “성희롱이나 성추행으로는 처벌하기 어려울 것 같고 무임승차죄로 처벌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결국 경찰은 무임승차에 초점을 맞추고 수사를 진행했다고 한다.

A씨는 “나와 남성은 단둘이 있었고 가해자는 ‘너’라는 단어까지 쓰며 음담패설을 했지만 둘이 있었기 때문에 공연성이 없어 명예훼손이나 모욕이 될 수 없고 ‘너’라는 지칭은 나를 말한다는 확증이 없어 특정성 성립이 안 돼 성희롱이 아니라고 하더라”라며 “이제 그 남성은 여성에게 음담패설을 해도 처벌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을 것이다. 음성메모를 켜지 않고 다니는 여성의 경우 허위신고로 오해받을 수 있다는 것을 그 남성이 깨닫게 될 거라는 게 소름 끼친다”고 토로했다.

A씨는 사건 다음 날 다른 경찰서를 찾았다. 앞서 성희롱 처벌이 안 된다는 경찰의 입장을 들은 것과는 달리 방문한 경찰서에서는 음성메모를 증거물로 인정했다. A씨의 글은 수천 회 이상 공유되며 많은 누리꾼들이 함께 분노했다.

A씨의 사례처럼 성폭력에는 ‘비접촉 성범죄’가 엄연히 존재한다. 비접촉 성범죄 피해자들은 ‘신체 접촉 성폭력과 다를 바가 없다’고 토로한다. 그러나 수사기관과 법원은 이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는 모양새다. 제대로 된 법이 없다는 이유다. 법이 현실을 못 따라가는 셈이다.

한국과 달리 프랑스에서는 지나가는 여성을 상대로 휘파람을 불거나 외모를 품평하는 이른바 ‘캣콜링(Catcalling)’을 처벌하는 법이 지난달 프랑스 하원을 통과했다.

벌금은 최대 750유로(약 95만 원)이다. 인디펜던트 등에 따르면 이 법안은 “여성이 집 밖에 나오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추진했다. 이에 따라 길거리 성희롱의 가해자는 최소 90유로에서 최대 750유로의 벌금을 내게 된다.

지난 2015년 실시된 코넬대학교의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여성 84%가 길거리 성희롱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비접촉 성범죄를 당한 것은 물론이고 길거리 성희롱을 당한 84% 중 50% 이상이 신체 접촉까지 겪었다고 한다. 조사 결과는 대다수 여성이 평범한 길거리마저 안심하고 걸을 수 없다는 의미로 풀이될 수 있다.

심각성을 인지한 프랑스 정부는 결국 캣콜링 처벌법을 추진하기로 한 것이다.

마를렌 시아파 프랑스 성평등 장관은 지난해 말 현지 라디오에서 “길거리 성희롱을 처벌할 규정이 없다”며 캣콜링 처벌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성추행과 호감 표시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지적에는 “우리 여성들은 성희롱이나 협박을 당하거나 안전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시점을 매우 잘 알고 있다”고 일축했다.

프랑스뿐만 아니라 뉴욕, 이탈리아, 포르투칼 및 일부 유럽권역에서는 이미 캣콜링이 금지돼 있다. 벨기에에서는 지난 2014년 길거리 성희롱 금지법이 통과됐으며 페루와 포르투칼에서도 관련 법안을 제정했다.

‘캣콜(Cat call)’은 번역하면 ‘야유’라는 뜻으로 남자들이 길거리에서 불특정 여성을 향해 날리는 성적인 희롱을 뜻한다. 캣콜링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비슷한 단어로 ‘울프 휘슬링(wolf-Whisling)’이 있다. 울프 휘슬링은 지나가는 여성에게 자신의 입에 손가락을 넣어 휘파람 소리를 내는 등의 행위다.

한국에서도 캣콜링 처벌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캣콜링 행위는 경범죄로 규정된다. 경범죄처벌법 41조에 따르면 캣콜링 행위 시 1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20대 국회에서 ‘스토킹 방지법안’을 발의, 캣콜링을 금지하려는 움직임이 보였다.

그러나 아직까지 캣콜링 행위로 인한 피해 사례가 많이 전해지지는 않는다. 캣콜링에 대한 개념이나 인식 자체가 희박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캣콜링 행위를 당하더라도 스스로 당하고 있다는 인식도 부족한 모양새다. 그러나 캣콜링 행위는 엄연한 성희롱으로 범죄행위로 규정된다. 이를 방치할 경우 실질적인 성범죄 피해자가 증가할 수 있어 사회 전반적인 인식전환도 필요한 시기다.

이 밖에 캣콜링 행위처럼 비접촉 성범죄에는 불법촬영이나 촬영물 무단 유포, 일명 ‘바바리맨’도 해당한다. 그러나 불법촬영이나 유포 등의 범죄도 10건 중 7건이 벌금형이 그치는 형국이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심각한 범죄이지만 실제로는 가벼운 처벌로 사건이 끝나고 있다.

이 때문에 캣콜링을 포함한 비접촉 성범죄 처벌 강화에 대한 호소가 잇따르고 있다. 법안이 이제는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해야 할 시기라는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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