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나라가 어렵다고 국적을 바꿨으니...”. 지난 14일 6.13 지방선거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유승민 전 바른미래당 대표를 향한 대구 지역 유권자들의 일갈이다. 이재만 전 자유한국당 최고위원과 유승민 전 대표의 대리전 양상을 띤 대구 동구청장 선거 결과가 이 같은 대구 민심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대구 동구는 유 전 대표의 지역구다. 또 바른미래당 후보였던 강대식 후보는 현역 동구청장이다. 두 사람 모두 동구만큼은 승리를 자신했다. 그러나 선거가 끝난 뒤 유 전 대표와 강 후보가 받아 든 성적표는 참담했다. 강 후보는 25.7%를 득표해 33.0%로 2위를 기록한 더불어민주당 서재헌 후보에게도 패배했다. 결국 유 전 대표의 ‘정치 실험’은 철저히 실패했고, 본인의 지역구에서마저 자당 후보가 참패함에 따라 ‘정치 생명’까지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 대선 참패→안철수 합당→지역구 함락(陷落)’... 실패로 끝난 ‘정치 실험’
- 劉 “다시 시작하겠다”... TK “총선, 대구 어딜 나와도 떨어질 것”
 

6.13 지방선거에서 가장 치열한 격전지로 꼽혔던 지역 중 하나가 대구 동구였다. 바른미래당 소속의 강대식 동구청장이 버티고 있는 만큼 바른미래당으로서는 반드시 사수해야 할 지역이며 자유한국당은 되찾아 와야 할 지역으로 선거전부터 치열한 기싸움이 펼쳐졌다.
 
‘劉 지역구+현역 프리미엄’
불구, 민주당에도 ‘패배’...

 
특히 대구 동구는 유승민 전 바른미래당 대표의 지역구이면서 이재만 전 한국당 최고위원이 당협위원장으로 자리하고 있는 지역이다. 유 전 대표와 이 전 최고위원은 앞선 20대 총선 때도 ‘동을’ 지역구를 놓고 한 차례 각을 세운 바 있다. 때문에 대구 동구청장 선거는 ‘유승민-이재만’의 리턴매치로도 인식됐다.
 
당초 지역정가에서는 본선보다 치열했던 예선전을 거치며 힘을 소진한 한국당이 상대 후보가 확정되기만을 기다리며 전력을 다져온 바른미래당 소속 현직 구청장에 비해 불리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왔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바른미래당 강대식 후보는 4만 3374표(25.8%)를 득표, 5만 5546표(33.0%)를 득표한 민주당 서재헌 후보에게도 뒤진 3위를 기록했다. 한국당 배기철 후보는 6만 2891표(37.4%)를 기록해 당선을 확정 지었다.
 
이와 관련 지역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통화에서 “이재만-유승민 대리전이었다고 봐야 한다. 현역 구청장이 처음에는 가장 유력했다. 그런데 결과를 보니 강대식 현역 구청장이 민주당에도 뒤진 3위를 기록했다”며 “유승민과 바른미래당에 대한 대구 시민들의 평가는 이미 끝났다는 것이다. 당이 어렵다고 당을 깨고 나간 것은 나라가 어렵다고 국적을 바꾼 것과 같다고 생각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도 “예견됐던 일”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대구 시민 A씨는 통화에서 “유승민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주도하고 당을 버리고 나갔을 때부터 대구도 유승민을 버렸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2017년 4월 3일, 당시 바른정당 유승민 대통령 후보는 TK 민심 잡기에 올인했었다. 유 후보는 대구 민심의 바로미터라 할 수 있는 대구 서문시장에서 기자회견, 상인연합회 간담회, 서문시장 화재현장 방문 등을 소화하며 오랜 시간 머물렀다.
 
그런데 이날 한 상인은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유승민 후보를 보자 상가 2층에서 “배신자!”라고 목이 터져라 외쳤다. 처음에 한 명으로 시작된 외침에 차츰 여럿이 동참했다. 그들은 유 후보를 향해 “배신자! 꺼져라!”라고 구호를 만들어 외치기 시작했다.
 
급기야 2층에 있던 한 극렬 상인이 바가지에 물을 퍼 와 바른정당 의원들을 향해 뿌리는 일도 벌어졌다. 거리가 멀어 물벼락을 맞은 사람은 없었지만, 일부 의원들과 시민들에게는 물이 튀기도 했다. 결국 대선 결과, 홍준표 후보가 대구에서 47.2%를 기록한 반면 유 후보는 12.1%를 득표하며 ‘배신자 낙인’을 통감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지선을 앞둔 시점에 안철수 전 대표와의 ‘이상한 동거’는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말았다.
 
‘정치 생명’ 최대 위기,
‘다시 시작’ 하겠다지만...

 
상황이 이쯤 되자 대선 패배에 이어 동구 사수에도 실패한 유 전 대표의 ‘정치 실험’은 막을 내리게 됐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으로 자리매김했다. 일각에서는 유 대표의 정치인생까지 끝난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지난 14일 유 전 대표는 대표직을 내려놓으며 “저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시 시작하겠다”고 말했지만 정작 지역 정가에선 ‘다시 시작’이 가능할지 의구심을 내비치는 실정이다.
 
유 전 대표 측에 따르면 유 전 대표는 바른미래당이 선거 패배 이후 한국당에서 떨어져 나오는 세력과 합치는 방식의 바른미래당 중심의 정계개편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유 전 대표는 한국당과의 관계 설정에서도 강한 반발감을 드러내던 입장에서 다소 전향해 새로운 관계 설정이 가능함을 내비쳤다. 아예 새로운 지대에서 거의 창당에 가까운 방식의 개편을 고려하는 것이다.
 
유 전 대표는 이날 ‘한국당과의 통합 가능성’에 대해 묻는 기자의 질문에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했던 기존의 입장에서 다소 바뀐 “백지상태에서 시작하겠다”며 “폐허 위에서 적당히 가건물을 짓고 보수의 중심이라고 하면 국민들이 납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유 전 대표 측은 ‘새 판 짜기’만이 유일한 ‘활로’로 여기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모두 ‘리모델링’이 아닌 ‘리빌딩’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자신 역시 ‘리빌딩’의 소용돌이에 승선해 자연스레 과거를 ‘세탁’하고자 하는 의도로 비친다.
 
그러나 정작 한국당은 바른미래당과의 당 대 당 통합이 아닌 ‘선 흡수, 후 쇄신’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분명히 ‘참패’했지만 TK 사수에는 성공했다. 반면 바른미래당은 ‘전멸’했다. 망했지만 ‘격’이 다르다는 게 한국당 내 분위기인 것이다.
 
결국 유 전 대표 입장에선 당장 2020년 총선을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된 모양새다. 그의 지역구인 대구 동구에서마저 자당 후보가 참패함에 따라 이대로라면 총선 결과는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와 관련해 지역 정치권 관계자는 “유 전 대표는 대구 동구뿐만 아니라 다음 총선 대구 어디에 나와도 다 떨어질 것이다”라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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