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이식도 ‘고령화’ 못 쓰는 장기 늘었다

<뉴시스>

[일요서울 | 권가림 기자] 각종 단체가 추운 겨울철만 되면 생명 나눔에 동참해 달라고 호소한다. 하지만 한 번의 참여로 9명의 생명을 살린다는 장기기증은 해를 넘길수록 차가운 한파를 맞는 모양새로 보인다. 복잡한 절차로 기증자가 적을뿐더러 아직 우리 사회엔 장기기증자를 예우하는 문화가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뇌사 장기 기증자가 줄고 있는 상황에서 기증자의 조건을 더 엄격하게 관리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 장기기증자 수 1282명…이식대기자는 3만4000명 ‘11배’
- 전문가 “부족한 장기 기증 …의식 전환 위한 홍보 이뤄져야”



장기 이식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대기자가 기증자보다 11배나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질병관리본부 장기이식관리센터에 따르면 지난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2451명의 뇌사자가 콩팥과 안구, 간, 폐, 심장, 췌장(췌도) 등 총 9960건의 장기를 기증했다.

정부에 등록된 장기 이식 대기자는 지난 3월 기준 3만4984명이다. 대기자 중 실제로 뇌사 장기를 기증받는 사람은 17명 중 1명인 셈이다.

이식될 수 없는 장기도 대기자를 늘리는 데 한몫한다. 최근 5년간 뇌사 기증 장기 중 114건(1.1%)은 대기자에게 끝내 이식되지 못했다.

이식학계는 못 쓴 장기가 늘어나는 근본적인 이유로 ‘고령화’를 들고 있다. 실제 동기간 뇌사 기증자 가운데 20세~29세 203명, 30세~39세 282명, 40세~49세 600명, 50세 이상은 1185명으로 나타났다. 50세 이상이 약 48%로 절반 가까이 차지했다.

기증자의 고령화 여파로 적출된 장기에 문제가 있을 확률이 높아진 데다 이식 수혜자도 평균 연령이 높아져서 고난도 수술을 견딜 확률이 떨어지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질병관리본부가 최근 5년간 콩팥 43건의 이식 실패 사유를 분석한 결과 대다수는 콩팥에 암이 퍼진 상태였다. 폐기된 안구 중 상당수도 각막에 염증이 있었다.

이 때문에 장기이식 대기시간은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장기이식관리센터 통계를 보면 한 사람이 이식대기 등록을 한 날로부터 이식수술을 받기까지 평균 대기시간은 1196일에 이른다. 약 3년 이상을 기다려야 장기 이식이 가능한 것이다.

그나마 폐는 평균 116일을 기다리면 이식이 가능하다. 가장 오래 기다려야 하는 장기는 신장으로 1934일 즉, 5.2년을 기다려야 이식을 받을 수 있다.

그사이 숨지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은 “콩팥, 간, 췌장, 폐, 심장 등 장기를 이식받기 위해 대기하던 중 사망한 환자가 최근 5년간 5790명이었다”라고 밝혔다. 

하루 평균 3.2명이 장기가 없어 생을 마감한 것.

게다가 한 병원이 지난해 10월 장기기증한 20대 환자의 시신을 예우해 주지 않고 유가족에게 시신처리를 시켰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장기기증에 대한 불신이 더욱 높아진 실정이다. 실제 장기이식관리센터에 따르면 해당 보도 이후 기증을 철회하려는 문의가 늘었으며 기증 의사 철회 건수도 평소 대비 9배 증가했다. 월 평균 취소자는 150명 내외다.

결국 우리나라는 최근 중국 내 장기 밀매로 대표되는 ‘장기이식 관광(Transplant Tourism)’의 두 번째 ‘큰손’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장기 기증 희망이 기증 등록 신청으로 이어지는 데에는 아직 많은 걸림돌이 있다.

장기기증자에 대한 예우는 천차만별이다. 정선주 포항대 간호학과 전임교수가 장기기증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심층 조사에 따르면 대다수의 장기기증자는 수술 이후 극심한 통증과 외상 후 스트레스로 고통받고 있었다. 특히 간 기증자의 80%는 심각한 우울증을 겪고 있었다.
 

대다수 장기기증자
외상 후 스트레스 겪어

 

수술 후 5년 이상이 지났는데도 마약성 진통제도 듣지 않는 고통이 지속돼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는 경우도 있다. 장기 기증 후 약해진 건강 문제로 강제 퇴직, 보험 가입 시 차별 등이 그것이다.

뇌사자 장기기증자에 대한 보상제도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지난 2002년부터 뇌사 장기기증자에 대한 국가보조금이 지급돼 뇌사 발생 전 병원비용과 위로비 등이 지원된다.

하지만 이러한 지원은 금전적 대가성으로 오인될 소지가 있어 기증자에 대한 예우 방안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수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2009년에 이미 장기가 어떠한 금전적 지급 또는 금전적 가치에 대한 사례 없이 자유롭게 기증돼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다.

복잡한 절차도 문제다. 질병관리본부가 지난 2016년 19~59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장기기증 인식조사를 보면 장기기증 의향이 있다고 답한 사람은 413명(41.3%)이지만 장기 기증 등록자는 17명(1.7%)에 그쳤다. 이 중 기증 의사가 있어도 등록 방법을 모른다거나 절차가 복잡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전체 40%에 달했다.

영국, 미국 등 선진국처럼 운전면허를 딸 때 장기 기증 희망 여부를 묻는 ‘장기 기증 촉진법’이 의료계와 환자단체에서 꾸준히 나오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연간 115만 명가량의 응시자 중 10%가 예비 기증자로 등록하더라도 신규 기증 희망 등록자를 두 배 이상 늘릴 수 있다.

이와 관련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관계자는 “해외에서 검증된 방식이니 서둘러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책임 떠넘기기 바쁜
복지부와 경찰

 

하지만 경찰과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 바빴다. 경찰은 “시험장에서 일일이 장기 기증 절차를 설명하기엔 인력과 예산이 부족하고 강요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업무 부담이 늘어나니 보건소에서 희망자를 모집하라”고 공을 넘기면 복지부가 “운전면허는 경찰의 소관”이라고 받아쳤다.

정부는 지난 2011년부터 직장이나 보험 등 장기기증자의 사회적 차별을 막기 위해 차별금지기관센터를 운영하고 있지만 유명무실한 실정이다.

법적으로도 마땅한 대책이 없다. 현행법에 따르면 순수장기기증자(이식 대상자를 지정하지 않고 임의로 기증하는 경우)는 한 해 입원 기간 동안 유급휴가 처리 대상이 된다. 하지만 회복 기간은 법적으로 제재를 가하는 부분이 아니다. 이에 회사 측에서 해고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더욱이 가족 간 이식처럼 이식 대상자를 지정하고 이식한 경우는 입원 기간조차 유급휴가로 인정받지 못한다. 정 교수는 “우리나라 장기기증은 대부분 가족 간에 이뤄지고 있는데 허술한 법으로 많은 사람이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라고 일갈했다.

선의로 시작한 장기기증자들은 후유증으로 고통받지만 치료방법이 없어 후회를 낳고 있다. 한국장기기증원 관계자는 “대 국민적으로 홍보가 이뤄져야 한다. 의식 전환을 위해 교육 분야도 크게 늘려야 한다. TV 광고만으로는 안 된다. 다양한 방면을 조성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구나’하고 인식전환을 시켜나가야 한다”며 “많은 사람이 꼭 돈 때문에 기증하는 건 아니다. 기증하는 것은 사회를 위해 당연한 일이다. 이는 시민의식으로 이뤄져야 하고 그러기 위해 대국민 교육, 홍보를 비롯한 기증자 예우가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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