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취임한지 한 달이 됐다. 김 위원장은 당내 고질적인 병폐인 계파 갈등을 수면 아래로 잦아들게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인적청산보다는 당내 문화와 시스템을 바꾸는 데 1차적 목표를 내세운 덕이다. 김 위원장은 ‘국가주의’라는 화두를 던져 문재인 정부를 공격하며 차별화를 시도했다. 또한 취임 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를 방문하는 등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면서 진보와 보수를 모두 아우르려는 모습이다. 나아가 지난 지방선거에서 한국당을 유일하게 지켜준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세 결집을 통해 정치적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김 위원장의 광폭 행보로 당권·대권 도전설도 나오고 있다. 이와 맞물려 지난 지방선거에서 대구경북에 올인했던 홍준표 당대표가 추석 전후로 귀국할 예정이다. 두 인사 간 TK 맹주 자리를 두고 주도권 다툼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 경북 고령 김병준, 의원직 상실 위기 이완영 지역구 ‘눈독’
- 홍준표 재경 동문회 챙기며 TK 구심점 역할… 당권까지
 

김병준 비대위원장이 8월 17일부로 취임한 지 한 달을 맞이했다. 지방선거 참패 이후 궤멸 위기에 빠진 한국당을 구하기 위한 구원투수로 나선 그다. 하지만 인적 혁신에 나서기보다는 당 문화와 시스템을 바꾸겠다며 그랜드 플랜을 품은 듯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대선 패배, 그리고 지방선거까지 패배한 정당에 책임론을 제기하기보다는 “재건축 수준의 공사는 시간이 걸린다”고 다소 유유자적하는 모습도 연출하고 있다.
 
박지원·이해찬 ‘김병준
대망론’ 잇따른 공세 왜

 
김 위원장은 당내 고질적인 계파 청산보다는 취임 일성으로 문재인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을 지적하는 ‘국가주의’프레임을 만들어 정부와 여당을 향한 공세에 나섰다. 북한산 석탄 국내 반입 사건에 대해서도 그는 “국가가 있어야 할 곳에 없었다”고 일침을 가했다.
 
또한 김 위원장은 쇄신보다는 민생 현장에서 서민들의 생활 형편이 어떤지 살피고 지역구를 돌며 지방선거 낙선자들을 다독이는 등 비대위원장 역할 이상의 보폭을 보이고 있다.
 
또한 한국당 지도부로선 이례적으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해 “모두 다 함께 잘 사는 나라”라는 메시지를 던지기도 했다. “노무현 정신은 여기에도 저기에도 있다”며 한국당에 몸담고서 당당하게 얘기해 더불어민주당을 자극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치 9단’으로 불리는 박지원 의원과 이해찬 의원이 ‘김병준 대망론’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포문은 박 의원이 열었다. 박 의원은 “과거에도 대권 행보를 했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 직전 총리 제안을 받고 깊숙하게 얘기했다”며 “비대위원장이 계속 국가주의, 먹방 적폐, 국민 중심 성장론 메시지를 던지면서 친박 비박 모두 안고 가려는 것은 대권을 염두에 둔 행보로 본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해찬 의원도 거들었다. 이 의원은 7월 23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정치 욕심도 있다. 2007년에 대선 출마를 하려고 열심히 노력했다”며 “우리 당에선 경선을 해야 하니, 다른 그룹을 만들어 하려 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김 위원장은 2007년 말 대선을 앞두고 각종 인터뷰를 통해 “장수가 가치와 명분이 있으면 하는 것이란 생각이 가슴 한쪽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등 대권 도전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이수성 전 국무총리 등과 ‘영남중심 정책신당’을 창당해 대선에 나서려 했다.
 
하지만 이 전 총리가 직접 출마 의사를 밝히는 등 상황이 여의치 않게 돌아가자 대선 출마의 뜻을 접었다. 2012년 대선에서는 김두관 민주당 대선 후보를 측면 지원했지만, 2017년 대선을 앞두고는 “패권정치를 막는다는 입장에서 저 같은 사람한테도 대선 출마 압박이 오면 쉽게 거절할 수 없을 것”이라고 재차 의지를 피력했다. 하지만 ‘김병준 대망론’ 관련 김 위원장은 “그 무겁고 험한 짐을 질 만큼 큰 인물인가.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일축했다.
 
한편 대망론이 잦아들자 한국당내에서는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해 비대위원장 임기를 마치고 당권에 도전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김 위원장이 고향은 경북 고령이다. 현재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1심에서 의원직 상실형을 받은 경북 칠곡·고령·성주의 이완영 의원 지역이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열릴 경우 김 위원장이 출마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이 의원은 선거법 위반으로 이미 1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2년, 벌금 500만 원, 추징금 850만 원을 선고받았다. 내년 초 대법원 판결이 열릴 전망이라서 의원직 상실이 결정될 경우 그해 4월에 재보궐 선거가 개최된다. 이럴 경우 6개월간 비대위원장을 할 수 있는 김 위원장으로선 1월 17일 비대위원장직을 마치고 2월 조기전당대회, 4월 재보선 정치일정에 참여할 수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김 위원장은 “제가 비대위 끝나면 전당대회에 나간다는 건 말이 안된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그는 “비대위가 성공한다면 그에 따라 당에 대한 영향력, 정치 전반에 대한 영향력 행사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고 대권 도전에 대해 일축한 것과는 달리 여운을 남겼다.
 
김 위원장, ‘영남 중심
정책신당’ 꿈은 진행중?
 

경북 고령 출신으로 이미 ‘영남중심 정책신당’을 꿈꿨왔던 그로선 비대위를 성공적으로 이끌 경우 TK의 맹주 자리를 노려볼 만하다는 판단을 끝낸 셈이다. 또한 차기 당대표가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공천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인 요소다.
 
김 위원장이 사실상 무주공산인 TK를 기반으로 대망론, 당권 도전설, 재보궐 출마설이 끊이질 않자 바짝 긴장하는 진영이 홍준표 전 대표다. 홍 전 대표는 지난 지방선거에서 대구·경북을 찾아 “한국당이 대구·경북에서도 버림받는다면 당을 해체해야 한다”며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살려주고 그래도 안 되면 2년 뒤 총선에서 심판해 달라”고 읍소했다.
 
또한 홍 전 대표는 지방선거 치르기 5개월 전 대구북을 당협위원장을 자청해 양명모 전 위원장 후임으로 임명됐다. 지방선거 결과 대구·경북만 제외하고 전국적으로 치러진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한국당은 참패했다. 홍 전 대표는 선거 다음 날 대표직에서 물러났고 대구북을 당협위원장 자리에서도 전격 사퇴했다.
 
그러나 홍 전 대표의 대구·경북에 대한 애정은 여전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측근들에게 대구·경북 재경 모임을 챙겨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홍 대표 역시 향후 당권이든 대권이든 정치적 재기를 위해서는 TK 지역의 민심을 잡지 않고는 힘들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홍 전 대표는 경남 창녕에서 태어났지만 대구에서 초·중·고교를 다녔다. 서울 정치인으로 분류돼 있지만 영남고 21회 졸업생으로 대구와는 친숙한 편이다. 동기회 회장을 역임한 박용복 경북대 교수는 홍 전 대표에 대해 “재경 동기 모임에 꼭 참석하는 홍 전 대표는 대구·경북 현안을 잘 알고 있었고, 애착이 대단했다”고 평하기도 했다.
 
현재 미국에 체류 중인 홍 전 대표는 추석 전후로 국내에 귀국할 것으로 알렸다. 그런데 ‘구원투수’로 나선 김병준 위원장이 정치적 야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소문이 끊이지 않으면서 멈췄던 페이스북 정치를 재개하는 등 김 위원장 견제에 나선 모습이다.
 
홍 전 대표는 7월 28일 고 노회찬 의원이 자살한 것과 관련해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그 어떤 경우라도 자살이 미화되는 세상은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고 적어 검색어 1위에 오르는 등 논란을 일으켰다. 홍 전 대표에 대한 진보 진영의 공세가 끊이질 않자 재차 페이스북을 통해 “같은 말을 해도 좌파들이 하면 촌철살인이라고 미화하고 우파들이 하면 막말이라고 비난하는 이상한 세상”이라고 주장했다.
 
홍 전 대표가 페북 정치를 재개하면서 한국당 내에서 당권 재도전설이 나오기 시작했다. 내년 2월에 개최될 전당대회에서 당권을 쥔 인사가 21대 총선에서 공천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물밑 당권 경쟁이 치열하다. 홍 전 대표는 당의 살길은 인적 혁신이라고 강하게 주장한 바 있다.
 
그는 당대표에서 물러난 이후 ‘마지막 막말’이라며 던진 화두가 인적 청산이었다. 홍 전 대표는 당시 인적 청산 대상으로 △고관대작 지내고 국회의원을 알바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 △추한 사생활로 정계에 둘 수 없는 사람 △의총에서 술주정 부리는 사람 △국비로 세계일주가 꿈인 사람 △카멜레온처럼 변색하는 사람 △감정 조절이 안 되는 사이코패스 같은 사람 △친박 행세로 국회의원 수차례 하고도 중립 행세하는 사람 △탄핵 때 줏대없이 오락가락하고도 얼굴 하나로 정치생명 연명하는 사람 △이미지 좋은 초선으로 가장하지만 밤에는 친박 앞잡이 노릇하는 사람 등을 지목했다.
 
이어 홍 전 대표는 “이런 사람들이 정리되지 않으면 한국 보수 정당은 역사 속에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홍 전 대표가 조기전당대회에 재등판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는 배경이다. 아울러 홍 전 대표는 귀국 후 한국당 내 공석인 대구 북갑, 북을, 수성갑 당협위원장 중 한 지역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 북을 당협위원장 자리를 사퇴한 이상 수성갑 당협위원장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성갑 지역은 여당 내 유력한 대권 주자 중 한 명인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의 지역구다. 홍 전대표로선 TK를 대표하는 여당 내 유력한 잠룡인 김 장관과 대립각을 세우는 것에 대해 손해볼 게 없다는 판단이다. 차기 대선 전에 치러지는 21대 총선에서 만약 승리할 경우 대권 재도전이 가능하고 설령 패하더라도 잃을 게 없기 때문이다.
 
‘인적 청산’ 주장 홍준표
귀국 후 ‘김병준’ 대충돌

 
홍 전 대표의 페북 정치 재개에 따른 ‘막말’논란에 대해 김 위원장은 조심스런 반응을 보이고 있다. 김 위원장은 7월 30일 “보수 정당이건 진보 정당이건 정치인은 말을 아름답게 해야 한다”면서도 “제가 이야기 드릴 것은 아닌 것 같다. 사람마다 나름대로 자기 캐릭터가 있는 것 아니겠나”라고 말을 아꼈다.
 
김 위원장은 홍 전 대표의 마지막 주문과는 달리 ‘인적 청산’을 후순위로 잡고 당내 문화·시스템 바꾸기에 방점을 찍은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당내 갈등만 부추키고 재차 친박, 비박 논란이 일 수 있는 민감한 반응은 삼갈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러나 홍 전 대표는 다른 입장이다. 국내 귀국과 동시에 그의 독설은 집권 여당뿐만 아니라 ‘인적 청산’을 뒤로 미룬 김 위원장을 향할 공산이 높다. 김 위원장이 아무리 당권·대권에 관심없다고 해도 홍 전 대표는 타고난 싸움꾼이다. ‘당권’이든 ‘대권’이든 나설 일 없다는 김 위원장과 ‘기회가 된다면 언제든지 나설 준비’가 돼 있는 홍 대표간 물밑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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