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니 대단하네’ 노는 물이 달라도 한참 달라

[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일부 재벌 3세의 이미지는 ‘아버지 잘 만나서~’라는 인식이 고착됐다. 안하무인 행동으로 언론에 조명된 재벌 3세들이 있다 보니 굳어진 이미지다. 단연 그렇지 않은 재벌 3세도 있다.

이들이 억울해 하는 것도 당연지사. 아버지의 곁을 떠나 독자적으로 일군 사업 영역에 두각을 나타내는 3세들이 있다. 둥지를 떠난 제비처럼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업을 일구어 내 아버지보다 더 큰 영광을 만들어 내고 있다. 과연 이들은 누구일까.

SK 최민정,재벌가 여성 첫 해군 전역 현대家 정경선, 사회적기업 챙겨
콘돔 사업·뮤지컬 배우·해군 중위 전역 등…톡톡 튀는 재벌가 자제 행보


SK 최민정 씨는 최태원 회장의 차녀이며 노태우 전 대통령의 외손녀다. 그는 병역 면제라는 사회적 논란 가운데서도 보통 어린 나이에 경영수업을 받는 재벌가 자제들과는 다른 이례적인 행보로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2014년 8월 SK그룹에 따르면 최태원 회장의 차녀 최민정 씨가 4월 시작된 17기 해군 사관후보생 모집에 응시했다. 

그의 입대 소식 직후 유명 포털사이트에는 “SK 최민정 해군장교 지원, 올바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네”, “SK 최민정 해군장교 지원, 이런 사람들이 큰 인물이 돼줘야 하는데”, “SK 최민정 해군장교 지원, 자립심이 정말 강한 사람이네” 등의 반응이 떠올랐다.

최민정 중위는 2015년 1월 충무공 이순신함에 배치돼 함정 작전관을 보좌하는 전투정보보좌관으로 근무한 데 이어 소말리아 해역에서 국내 상선을 보호하는 청해부대 일원으로 6개월간 임무를 수행했다.  

최민정 중위는 지난해 11월 30일 제대했다.  제대 이후 행보는 알려지지 않았다. 장녀 윤정 씨와 같이 SK그룹 내 계열사에 입사할 것이란 관측도 있지만, 그간 다른 재벌가 자제들과는 다른 행보를 보여왔다는 점에서 바로 SK그룹에 입사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현재 최 씨는 중국에 머물면서 특별한 행보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런 ‘금수저’도 다 있네

창업주인 아버지 또는 할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걸으며 사회적기업을 만들려는 젊은이들을 지원하는 재벌 3세도 있다. 정몽윤 현대해상 회장의 장남인 정경선 루트임팩트 최고기술경영자(CIO)가 그 주인공이다. 정 대표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손자다.

정 대표가 2012년 설립한 루트임팩트는 사회적기업을 만들려는 젊은이들을 발굴하고 자금을 지원하는 비영리법인이다. 사회공헌활동을 하고 싶어하는 기업에게 자문을 제공하기도 한다.

지난해 7월 서울 성수동에 세워진 지상 8층 지하2층 건물 헤이그라운드는 루트임팩트가 250억 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해 지은 건물이다. 이곳에 스타트업, 투자기관 등 모두 41곳이 입주했다.

노숙인의 자립을 지원하는 잡지 ‘빅이슈코리아’, 위안부들의 심리치료 과정에서 만들어진 작품을 다양한 패션 아이템으로 재생산해 판매하는 ‘마리몬드’ 등도 이곳에 입주했다. 지난해 헤이그라운드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제3차 일자리위원회 회의가 열리기도 했다.

정 대표가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허영심을 채우기 위한 취미가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도 따라다녔지만 정 대표는 “그런 시선은 슬프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며 “내가 진정성있게 묵묵히 하다보면 언젠가 인정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용만 두산 회장의 장남 박서원 오리콤(두산 광고 계열사) 부사장은 업계에서도 소문난 ‘별종’이다. 그가 만드는 광고는 창의적이라는 평보다 획기적이라는 평이 더 많고, 굳이 왜 이 분야에 손을 대나 싶을 정도로 논란을 만드는 인물이기도 하다.

옥외 반전 포스터 광고였던 ‘뿌린 대로 거두리라(What goes around, comes around)’가 그의 광고 대표작이다. 전봇대를 둘러싸는 형태로 만들어진 해당 광고는 총을 들고 있는 군인의 총구가 기둥을 한 바퀴 돌아 결국 자신의 머리를 향하도록 제작됐다. 해당 광고는 세계 5대 광고제에서 12개 상을 휩쓸었다. 방황하던 두산가의 이단아는 그 방황의 시기 덕분에 세계를 제패한 광고인이 됐다.

2014년에는 돌연 ‘콘돔 사업’에 뛰어들었다. “콘돔은 섹스를 강요하는 제품이 아니라 나를 보호하는 장치”라고 역설한 그는 콘돔 이름도 ‘바른 생각’으로 지었다. 콘돔 사용이 남을 배려하고 나를 보호할 줄 아는 ‘바른 생각’에서 비롯된 행동임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박 부사장 창의력의 원천이 되었던 ‘빅 앤트’는 지난해 4월, 임시 주주총회에서 해산을 결정했다. 경영 실적이 부진한 탓이었다. 오리콤 관계자는 해산 결정에 대해 “박 부사장이 ‘오리콤’을 맡으며 빅 앤트 사업과 중첩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을 고려했다”고 전했다.

부모와 다른 길 걷는다 ‘기대감’

경영이나 창업이 예술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인물도 있다.
뮤지컬배우 함연지 씨는 오뚜기 창업주 함태호 명예회장의 손녀이자 함영준 회장의 장녀다.

아직 ‘뮤지컬 배우 함연지=오뚜기 회장 딸’이라는 보도가 나온 적이 없음에도 그를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하면 연관검색어에 오뚜기가 뜬다.

올해 초 발표된 연예인 주식 부호 5위에 이름을 올린 그는 14세이던 2006년 당시 12억 원에 달하는 오뚜기 주식 1만주를 보유해 미성년 주식부자 순위에 이름을 올린 바 있다. 

대원외고, 뉴욕대학교 티쉬예술학교 연기과 출신인 함연지는 2014년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데뷔했다. 당시 그룹 SES 출신 바다, 소녀시대 서현과 함께 주인공 스칼렛 역을 꿰차 주목받았다.

하지만 함연지는 얼터(대역·영어 ‘Alternate’의 약어)로 총 50회 공연 중 단 3차례만 무대에 섰다. 얼터란 전체 공연 중 일부를 주연 배우 대신 담당한다. 긴급 상황이 생겼을 때만 투입되는 커버(Cover)와 달리 어느 정도 출연 횟수를 보장받는다. 

이후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무한동력’, ‘지구를 지켜라’ 등에서 열연을 펼쳤으며, KBS1 드라마 ‘빛나라 은수’에 조연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2015년에는 직접 오뚜기 카레 광고에 출연해 관심을 받기도 했다.

한 관계자는 “부모 세대와 다른 길을 걷는 자녀들의 모습이 신선한 것도 사실이다”며 “대중은 이들이 흔한 드라마 속 재벌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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